0. 들어가며
제목은 이야기는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습니다.
몇달 전에 한양대의 김 모 교수란 분이 "20대 너희는 희망이 없다" 어쩌구 하시는 이야기를 넷에 올렸는데 그게 386 분들께 회자되며 20대는 희망이 없다는 둥 어쩌구 하는 이야기가 넷을 다시 한 번 장식했습니다. 이런 류의 20대 비판론이 아직도 넷에서 계속되는 모양인데요.
솔직히 말해서 저 이야기는 우석훈 박사와 같은 이른바 진보지식인들이 늘 하는 이야기지요.
"오오, 88만원세대여. 너희는 단결하지 않고 나서지 않아 희망이 없다. 그러니 짱돌을 들고 나서자. 함께 광장에 나가 싸우자"
뭐, 틀린 말도 아니겠지만 그다지 유효한 말도 아닙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라는 현재의 1980년대생들이 움직이지 않는 요인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1. 광장경험 부재
왜 광장에 안 나서냐구요? 가장 큰 이유는 나서 본 적이 없으니 그렇지요.
1980년대생은 대략 1999년부터 대학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요. 이 시기는 국민의 정부 집권 중반기입니다. 이후 참여정부 집권시까지가 이들이 지내온 대부분의 '대학 생활'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이 기간은 이른바 '광장'에 대중이 나설 일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나설 일이 뭐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물론 몇 가지 있죠. 미선이 효순이 사건, 탄핵 사태, FTA를 정점으로 미군기지 문제나 철거민, 민주노총 시위, 화물연대 등등 이군요.
그런데 이 중 미선이 효순이 사건, 탄핵사태를 제외하면 대부분 노동 계열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시기에 거리로 뛰쳐나간 '대학생'들은 거의 백이면 90은 민노당 계열(지금은 진보신당과 분당했지만)이었지요. 대부분의 대학생은 정치에 별로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는 경우라도 민노당 계열을 지지하던 쪽이 아니었다면 대부분 집에 있었죠. 탄핵 사태 때야 거리로 다들 나섰겠지만 그거야 예외적 상황 아닙니까?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 겁니다. 거의 나와 본 적도 없고 나오면 술 마시러 다니던 애들한테 "너희 왜 안 나와? 안 나오니 너희는 희망이 없어. 어리석은 놈들"이라고 백날 외쳐봐야 어떻게 나오겠어요?
바꿔 말하면 "너희 왜 안 나와?"는 "너희 왜 민노당파로 안 갔냐?"와 별 다를 바 없는 힐난입니다. 이른바 386분들에게 익숙한 운동권이나 참여지향적 대학생은 백이면 7, 80은 민노당(지금은 진보신당도 상당수지만)으로 갔습니다. 물론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지지자라면 그런 소리를 할 법 하시긴 하죠. 왜 우리 쪽으로 와서 '정의의 투쟁'을 시작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참여정부 기간에 만족하거나 체념하거나 관심없거나 셋 중 하나였습니다. 이들이 거리에 나가는 게 익숙하겠습니까?
이건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지난 민주정권 10년이 안정된 기간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기간 동안 대학생이 "역사를 바꾸기 위해 일어서자!" 운운할 만한 일은 딱히 없었습니다.(예외라면 FTA가 되겠는데 이건 논란이 많으니까 다음 기회로 논의를 미루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바뀌니 다들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겁니다.
2. 신자유주의 물결 때문에
이러니 저러니 말해도 세계적인 제약조건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결과 IMF 이후 한국도 별 수 없이 경쟁체제를 도입하게 되었고, 사회보장체제가 완비되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구직 실패가 곧 사회 실패자에 가까워지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여정부가 여러가지로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 제약조건(정치적 지지도의 부족, 기득권과 비기득권 양자에 대한 설득 실패, 집요한 보수 우파 세력과 진보 지식인층 양자의 공격)과 세계적 제약조건(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에 복지가 세계적으로 해체되는 조건 하에서 복지를 강화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대학생들에게 구직 실패는 나락으로 떨어지라는 소리나 다름 없습니다. 아니면 인터넷폐인이 되서 방구석이나 굴러다녀야겠죠. 따라서 좋건 싫건 취업을 위해 뛰어다녀야 하는 상황입니다.
요즘 취업스펙이 어떤지 인사담당자 분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어학연수 기본, 외국어 2개 이상, 학점 4.0 이상, 여기에 덧붙여 면접에서 독특한 '패기와 독창성'을 보여주면서도 '튀지 않는' 모습. 쓰고 보니 참 모순적이고 이상한 인재를 요구한다 싶지만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더 많습니다.
아예 사회로 나가지 못한 학생들이 사회로 나갈 기회조차 봉쇄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라 직접 상관은 없습니다만 이른바 지식인들이 이런 실정을 외면하고 "광장으로 나와라" 운운하는 소리 들으면 진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마치 대기업 회장이나 현 대통령께서 "중소기업 취직이 좋다" 운운하는 소리를 할 때 같더군요.
3. 교육 문제
요즘도 교육 문제로 말이 많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10년 민주정부 시절에 교육개혁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해찬 전 총리가 추진하신 교육개혁안은 취지야 좋았겠지만 결국 한국사회 내에서는 사교육 확대로 귀결되었습니다. 요즘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수많은 논술학원이나 수행평가 대행학원이 왜 생겼겠습니까?(물론 사교육 확대는 의외로 교육산업 확대와 실업자 감소라는 효과를 낳았습니다만 이 문제는 다른 이야기니까 다음 기회로..)
문제는 이런 '자율화 교육' 하에서 학생들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는 겁니다. 예컨대 요새 10대들이 촛불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와, 얘네들은 정신이 똑바로 박혔구나. 역시 교육개혁은 성공했어." 운운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그건 그애들이 똑바로 박힌 거지 10대 대다수가 이른바 '개혁적'이 된 게 아닙니다. 10대든 20대든 대다수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것은 '억압받는 현실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 분노가 예전에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운운 식으로 표출되다가 요즘은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로 변한 겁니다. 이건 오히려 나중에 잘못 틀어질 경우 파시즘이 될 우려까지 있습니다. 물론 출구를 올바로 찾는다면 폭발적인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가장 좋은 예가 근현대사 교육입니다.
요새 근현대사 책은-된장맞을 뉴라이트 교과서 빼고- 예전보다 무지 좋아졌습니다. 저도 동생들 있어서 몇 개 봤는데 잘 안 나오던 중도파 이야기도 나오고 친일 문제도 제대로 다루고 근현대사 관련 내용을 충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멋진 근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하는 학교가 몇이나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근현대사는 수능시험과 별 관련이 없습니다. 때문에 국사 후반부는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이 없습니다. 어떤 10대들은 국사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아예 학교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는 게 실정입니다.
윗 부분은 현 10대 관련이지만 20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이른바 교육 문제에 있어서 정확한 현실에 대해 알려주는 교사나 교과과정은 드뭅니다. 현재는 예전에 80년대에 있었던 이른바 '의식화 교육'을 할 선배도 거의 없고 있어도 백이면 7, 80은 민노당계 아니면 진보신당계고 나머지 2, 30은 아예 사회당계나 좌파 쪽 운동단체인 '다함께' 정도입니다.
특정 정파에 소속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은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게 이른바 학생 운동권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배운 게 없는데 뭘 보고 나서겠습니까?
4. 나가며
간단히 말해서 20대가 광장에 나오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역으로 말하면 국민의정부-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시대가 대학생 참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 기간 동안 태평성대랄 것 까지는 없어도 '미선이 효순이 사건', '탄핵 사태'를 제외하면 대학생이 나서야 할 만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물론 노동 계열과 관련된 사건들은 참 많았지요. 미군 기지 반대나 FTA의 경우는 반드시 노동계열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민노당 계열 세력에서 이슈를 선점하면서 특정 정파의 문제인 것처럼 흘러간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경우 다른 정치 세력을 지지하거나 중립 성향인 사람들이 나서기는 어렵겠죠.
시대가 달라졌다고 이런 관성이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끊긴 시위 전통이 쉽게 되살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는 20대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20대가 참여지향적이 아닌 게 사실입니다. 너무 태평성대를 겪어서 그런지, 취업난에 시달려서 그런지, 정치에 대해 별 개념이 없는 경우도 있고, 2007년에 MB를 지지한 케이스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40대 386 선배들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MB의 열렬한 지지자로 활동하는 것도 엄청나게 많이 봤습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유권자를 탓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조건을 인정하고 그 기반 하에서 설득과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게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P.S. 20대가 왜 안 나가는지 썼으니 그렇다면 어떻게 나가게 해야 하는지도 써야겠죠. 다음에는 그 방안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저라고 뾰족한 수도 없긴 합니다만..
'기록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운찬 총리 카드, 재미있는 인사지만 실패할 것 (2) | 2009/09/04 |
|---|---|
| 최장집 교수의 양비론 (0) | 2009/09/02 |
| 유시민 지지율 하락 문제 (0) | 2009/08/28 |
| 사실상 내각제 개헌안 반대한다 (0) | 2009/08/28 |
| 민주화 영웅의 시대가 끝났다 (0) | 2009/08/18 |
| 20대가 광장에 나오지 않는 이유 (2) | 2009/08/05 |

